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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기(梁相基.1883~1910)) 의병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운 풍암정에서 병서를 읽고, 무예를 닦았다. 20대 초반 광주경찰서 순사가 되었다. 1908년 4월 23일, 아버지가 의병장인 것이 알려져 순사 직에서 면직되자 곧장 본격적인 대일 항쟁 의병의 길로 들어섰다. 1909년 12월, 양상기 의병장은 남원 도통리에서 은거 중 일제 토벌대에게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내란 강도 방화 및 살인 죄목으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다. 하지만 1910년 5월 17일 대구공소원은 다시 동일한 죄를 적용하여 교수형을 선고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 8월 1일, 아버지 양진여 의병장이 순국한 지 두 달 뒤, 똑같은 장소(대구감옥소)에서 아들 양상기 의병장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때 양상기 의병장 나이는 2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