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page


43page

오성술((1884~1910) 호는 죽파(竹坡). 활동 연도는 후기 의병에 속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뒤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침탈이 심해지자 가재를 털어 의병기금을 마련해 김태원 의진에 들어가 활약했다. 김태원의 의진은 1908년 1월 창평의 무동촌전투에서 지휘관 요시다를 비롯해 여러 명을 사살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그해 4월 무등산전투에서 김태원이 죽자 의진을 수습해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1908년 1월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광주에 거주하는 사이토 일가를 습격해 3명을 살해하고 무기를 탈취한 뒤 방화했으며, 나주에서는 일본 밀정 황도현의 재산을 몰수한 후 살해했다. 1909년 8월 영산포 헌병대가 파견한 '토벌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처럼 오성술은 1907년 후반부터 의병에 투신하여 약 2년간 광주.나주.담양.함평.고창 일대를 누비며 반일 투쟁을 주도하였으며 1910년 교수형을 언도받아 그해 9월15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