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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수학하시던 중 1895년 8월 명성황후께서 왜적도의 손에 무참히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 과거를 단념하시고 담양 삼인산에 풍저암을 세워 장정을 모아 병법을 가르치시고 무술을 연마토록 하셨다. 1904년 2월 소위 한일의정서가 늑결되자 거의할 것을 결심하시고 사방에 격문을 날려 의병을 불러모으니 수유(須臾)에 300여 명이 기꺼이 달려왔다. 장성의 기삼연 창평의 고광순 정읍의 최익현 임병찬 등 여러 의병장들과 호응하여 1907년 9월 드디어 의군 편성을 완료하였는데 공은 상대장에 추재되었고 도총장에 안판구를 중군장에 박성일 아우 서현(초명 동골)을 호군장에 임명하고 곧장 작전에 돌입 두 동안 정읍 창순 고창 담양등지의 왜병 진지를 습격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08년 1월 하순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에서 왜병 200명과 교전 막심한 피해를 주었고 동년 2월 김태원 의병장의 원병 요청으로 50명을 파견하여 담양군 남면 무동리 전투에서 왜장 길전(吉田)소좌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 그해 11월에는 장자 상기 장군의 막하인 동복 의병 200명 영광 전해산 의병장 막하 의병 200명 영산포 강사문 의병장 조경환 의병장 등의 의병 도함 900여명으로 연합군을 편성 이를 지휘하여 광주의 왜병수비대를 공격 대승을 거두었다. 12월 25일 장성 약수리에서 산전(山田)소위가 이끄는 왜병에게 급습을 받고 교전 중 부상을 입으셨고 담양 노천동에서 기습을 받았으나 묘계로 역공하여 거듭 전과를 올린 그 여세를 몰아 광주 나주 영광 장성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나 1909년 8월 악랄한 왜군은 소위 남한의병 대토벌 작전으로 의병군 진지를 초토화했을때 총상을 입으시고 담양 갑향골에서 부상을 치료하시던 중 왜병 미촌(梶村)중위의 정찰대에 체포되어 광주감옥에 수감되셨다가 1910년 3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으시고 1910년 5월 30일 망국의 통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