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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용두동 151-1 애국지사 악포 김홍두 선생 공적비를 찾아왔다. 1916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1915년에 결성된 혁명단체로서 주로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폈다. 그런데 1918년초 동회의 조직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피체되자 몸을 숨기고 있던 중 1920년 7월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안창호(安昌浩)·김 구(金九) 등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인들과 연락·접선·회합한 후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하였다. 그런 뒤 각지 청년회와 연락하며 임시정부의 통신기관(通信機關) 설치에 힘쓰는 등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남(全南) 나주(羅州)에서 피체되었다. 동년 11월 27일에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21년 3월 8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확정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6년 전남 장성(長城)에서 군자금 모집중 장성경찰서에 피체되어 3개월간 옥중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