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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간 교편을 잡고 조화임(조아라 광주YWCA명예회장의 姉(자))여사 등 훌륭한 제자를 배출하고 그 무렵 야간에는 전남 민족운동의 본거지였던 광주 서읍 광산정 소재 흥학관에서 야학교사를 하여 수많은 선각자를 배출하였는데 김기권 애국지사 등이 흥학관 출신인 것이다. 1924년말 8월 동아일보 광주지국장이었던 광산김공 용환씨와 결혼하여 동국의 총무 겸 여기자로서 부군과 더불어 언론활동을 하고 부군의 신간회 활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민족계몽운동을 막후지원하고 아울러 시숙 김용준(1968년 3월 1일 대통령표창 2512호)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여 동인으로 하여금 광주학생운동의 선봉이 되도록 하고 3년동안 동인의 옥고시중을 하였으며 부군이 광주학생의거와 관련하여 학부형회의 임시의장 및 재감학부형회의 상무로서 당시 비공재였던 재판상황을 취재 활동 중 체포되자 여기자로서 민완한 취재 솜씨를 발휘하는 등 광주 최초의 여성 언론인으로서의 활약도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해방 후에는 부군의 전재동포구제회장의 활동 및 정치활동을 지원하여 1960년 광주 을구에서 민의원으로 당선되게 하였고 슬하에 11남매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실업 의료 법조 교육 사회사업자 제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의학 공학 행정학 이학 등 박사만도 4명을 배출하는등 다른 어느 애국지사보다도 자녀교육에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오랬동안 원불교를 통하여 불우시설돕기 및 청소년선도 및 교화사업에 전념하여 1980년 4월 2일 화타원이라는 법호를 받고 1983년 5월 7일 한국일보사 제정 훌륭한 어머니상을 수상하였으며 동년 10월 10일 자유중국 쌍십절 행사에 3.1여성동지회 대표로 참석하고 1984년 3월 1일 전남지사의 감사패를 받았다. 동년 7월 25일 80세를 일기로 타계함에 모교인 수피아여고에서 학교장의 예우를 하였고 1986년 12월 16일 정부에서는 대통령표창 제66603호를 추서하였으니 여사의 일생을 통한 조국 광복에의 충절 후세교육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