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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최수향) 선생은 1919년 3월 10일 광주지역의 독립만세시위를 위하여 교사인 박애순·진신애 등의 지휘를 받으며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을 준비하고 시위 당일에 시위하기 위하여 모여든 군중에게 배포하여 주면서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가를 행진하며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1920년부터 1924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서울 정신여학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 춘·추계방학을 이용하여 광주흥학관에서 야학을 지도하며 청소년에 대한 계몽과 독립정신의 고취에 이바지하였다. 1928년부터 1940년 8월까지 동아일보 광주지국장인 남편과 함께 동지국 총무 겸 기자로 임명되어 민족정신 계몽과 민족지 보급을 위하여 활동하는 등 구국운동에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