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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선생은, 공주·순창 등지에서 후기 의병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이 국운이 날로 기울어 을사조약이 강제로 늑결되게 되자 "근고팔도민서(謹告八道民書)"라는 격문을 각지로 띄웠다. 박현동은 그 격문을 보고 면암 의진에 가담할 것을 결의하고, 그에 호응하기 위하여 의병 200여 명과 총 20∼30정으로 무장하고 광주 수비대를 공격할 목적으로 공주를 떠났다. 다시 전북 임실에서 의병 80여명과 총 50 정을 추가하고 면암의 근거지인 순창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다. 4월 7일부터 8일 사이에 광주·전주·공주 등지로부터 면암 의진을 저지하기 위해 집결한 진위대와 수비대를 상대로 순창 읍내에서 교전하였으나, 의진의 형세가 정비되기 전이었으므로 패퇴하고 말았다. 그러한 일련의 의병활동이 적에게 발각되어 1910년 3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유형 5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경술국치로 일제의 밀계가 이루어지자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