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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사 오상열 본관은 나주 호는 의재(義齋)이며 1878년(고종 16) 1월 광산구 명도동 대명마을에서 덕이 있고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 오영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공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기개와 도량이 넓고 커서, 국운이 기울고 일본의 압박과 침략이 더해지는 것을 분히 여겨, 일본과 싸워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비밀리에 화약과 무기를 만들어 의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여, 28세의 젊은 나이로 1906년 10월부터 무력 항일전선에 뛰어 들었다. 1907년부터 함평, 나주, 담양, 광주 등에서 왜적과 대항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적에 비해 무기가 열악하고 병사가 부족하여 결국 1908년 12월 23일 엄동설한에 이곳(임곡 사호치)에서 왜적과 치열히 싸우다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절하였다. 1907년 10월 15일에 첫 출전하면서 부인 배씨에게 남긴 아래의 시가 의사의 충과 효를 잘 나타내 준다. 吾生未可必(오생미가필) 내 삶을 기필하기 어려우니 須護腹中兒(수호복중아) 모름지기 뱃속에 아이를 잘 보호하시오. 不恨死當死(불한사당사) 마땅한 죽음에 죽는 것은 한이 없으나 親年六十餘(친년육십여) 부모님 연세 예순이 넘으시니 그것만이 마음 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