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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후석(後石)이고, 본관은 나주이며, 전남 광산 출신이다. 오하규(吳夏圭)의 아들로 오항규(吳恒圭)에게 입양되었다. 기정진의 문인이다. 임헌회·송근수·최익현·송병선·송병순 등 기호학파를 중심으로 거유들과 폭 넓게 종유하였다. 40세 때부터는 기우만과 함께 매월 초하루 윤강을 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동지들을 규합하고 향약을 행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동학에 물들지 못하게 막기도 하였다. 1896년 일제에 항거하여 기우만이 장성에서 창의하였으나, 상중이어서 따르지를 못하였다. 1905년 기삼연고광순과 함께 의거를 모의하였으나 노모의 봉양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1911년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하다가 구금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17년 이후에는 제자들이 지어준 용진정사에서 강학에만 몰두하면서 6백여 명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출처 : 신종우의 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