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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우리민족 말살정책과 조선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했고, 학생들의 투쟁의지는 더욱 비밀결사형태로 조직화하여 해방전까지 끊임없이 항거했다. 광주사범학교에서는 1941년 6월 1일 동맹휴학으로 권충원, 김두운, 김병옥, 김영국, 김용기, 박우태, 송진석, 유승복, 이순택, 정지영, 한흥섭등이 퇴학당하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1943년 5월 광주고보 '무등회'사건을 계기로 제2차 학생독립운동이 발발했는데 광주사범학교에서도 1943년 비밀결사인 '무등독서회'가 결성되어 독서모임을 통한 정통역사관 정립, 항일사상 전파, 임정연락원의 밀명접수, 연합군 상륙시 행동대원으로의 봉기계획, 태극기 제작, 일제 패망과 조국해방 임박설 등 항일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이들은 1944년 10월에 발각되어 10개월 동안 온갖 고문을 당하여 피폐해진 상태에서 1945년 8월 15일 해당을 맞게되었다. 죽음 직전에서 풀려난 '무등독서회' 회원 18명은 곽이섭, 김갑수, 김상중, 김용덕, 노동훈, 박현재, 안동영, 옥대호, 유창열, 이경채, 이석규, 정병광, 조규학, 천충식, 최정주, 허종철, 홍완표, 홍창기 등이다. 이와같이 정의감과 애국심이 강렬했던 학생들의 일제강점 압제하에서 떨쳐 일어나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려고 분투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이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만났을 때마다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왔다. 이렇듯 또한 우리의 앞날을 밝혀 갈 등불이 될것이다. 선배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적 투쟁을 기리기위해 제1차 광주학생독립운동시기의 전남사범학교 학생의 역사적 사실과,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시기의 광주사범학교 '무등독서회'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 탑을 초등교원양성의 요람인 광주교육대학교, 무등산이 내려다 보고있는 이 풍향골에 세운다. 이는 앞으로 초등교단을 지켜갈 이 교정의 주인공들에게 선배들의 숭고한 자취를 알리고, 그 거룩한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 역사를 이 빗돌에 새겨 영구히 기리고자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