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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야수와 같은 일제의 독아(毒牙)로 말미암아 집을 잃고 가산을 빼앗기고 부모형제는 이산되는 등 사선(死線)을 방황하기 무릇 10여년, 견디다 못한 동포 형제들은 기미(1919)년 3월 1일 맨주먹을 부르쥐고 독립만세를 절규하며 피의 항쟁을 감행하였다. 그 뒤로 10년, 일제의 강압은 갈수록 더하여 동포들의 몸에는 열, 스무겹으로 쇠사슬이 매어지고 금수강산 아름다운 강토는 문자 그대로 감옥으로 화하니 민족의 운명은 바야흐로 풍전의 등화격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때, 광주의 학생들이 자유의 봉화를 높이 들고 꺼지려는 민족혼에 기름을 붓고 불을 켜댔으니 악몽에서 허덕이던 온 민족은 몸부림치며 다시 한번 일어섰다. 그리하여 방방곡곡에서 외치는 자유의 부르짖음은 울리고 울려서 지축을 뒤흔들었다. 5천년동안 연면히 흘러내려오던 민족정기가 이리하여 다시금 소생하였나니····중략.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건립취지문에서) 1929년 11월 3일에 이곳 광주에서 일제의 교활한 식민통치와 민족차별 교육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고자 1953년 5월 1일 광주제일고등학교 개교일에 당시 최동문(崔東文) 동창회장의 주도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건립기성회가 결성되어 신지인 모금운동을 시작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은 1953년 9월 10일에 공사를 착공하여 8개월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54년 8월 10일 제막식에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탑높이: 10.9m 설계·조각 : 차근호(車根鎬) 비문휘호: 이승만(李承晩) 후면 글: 이은상(李殷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