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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대군의 17대손이다. 농포공 영의의 자로 서기 1897년에 광산군 본량면 북산리장등에서 출생하시니 천자가 순미하고 특절이 고결하며 재재예가 초윤하여 후석문하에서 학업하신바 문일지십으로 가위 출천지재라 칠서를 비롯 성리서및 시서석가의 어를 무불통달하고 도의를 강마함에 문명이 원번하여 년장자를 포하만 제자기 운집한지라 문학지사와 위국진충으로 교론의 기본으로 삼으니 이는 소년시절부터 충의심이 충?된소이로다. 망국의 해1905년 굴욕적인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장군은 우국애정을 일편시로 표하시되 "시아국모지수는 수십명치이말진보요 진아황상지죄는 몰석이등이유유여라" 하시고 이에 살신구국할것을 결심하고 죽봉 김태원, 해산 김수용장군과 추종참의하여 의병을 일으켜 토적할것을 맹서하고 광산과 나주에서 충장년약 800명을 규합하였다. 의병조직은 상대장에 이기손, 선봉장에 박일동, 엄석훈, 중군장 양동환, 종군장 전해원, 포대장 김봉선, 좌익장 정만선, 우익장 조만길, 서기 이좌훈, 군량지원에 문장환등으로 전적을 살펴보면 담양무동지전에서 왜장 길전을 비롯 수십명을 사살하였고 광주 광산, 나주, 영광, 함평, 고령등의 전첩과 백여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50여면에 걸쳐 무안과 남해의 진도, 완도, 조약, 지리에까지 출전하여 왜병을 구축하는 혁혁한 전과를 획득하셨다. 당시 의병장의 대부분이 전몰하였으나 오직 이장군만은 천문지리와 역리에 통달이 되어 10여일간의 천기를 예지하신지라 상시 적망??하시다가 적중아과하니 세불상지라 도사어적이 하분방국이리요하는 요지의 미병문을 발표하시었다. 왜병들은 금재장군을 격파하지못하고는 평란이 없다고 하였으니 진하위 문무겸전한 용장이시다. 세궁력진하고 국가견망에 장군은 만주와 ?국과 간도등지로 망명하시었다가 잠입국중하여 충남 금산에 은거코 후학들의 교육과 민족정기부식에 전념중 서기 1957년에 한 많은 일평생을 마치시었다. 오호라 시운이 부제하고 명도가 기험하여 처양의 기회가 요원터니 사론 제발함에 관민이 상응한지라 자에 의적이 의연히 빛나게 되었으니 청사에 길이 남으리로다. 장군의 후예로 장남은 강조요 차는 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