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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舍弟心書(여사제심서) 國家安危在頃刻 (국가안위재경각,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거늘) 意氣男兒何待亡 (의기남아하시망, 의기남아가 어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盡忠竭力義當事 (진충갈력의당사, 온힘을 쏟아 충성을 다하는것이 의의 마땅한 일이니) 志濟蒼生不爲名 (지제창생붕위명, 백성을 건지려는 뜻일뿐 명예를 위하는것은 아니라네) 兵死地含笑入地可也(병사지함소입지가야, 전쟁은 죽으려는 것 기꺼이 웃음을 머금고 지하에 가는것이 옳으리라) 戊申 二月十九日 舍兄金準書(무신년 2월19일 형 준이 쓰다) 이 시를 지은 후인 3월에 동생 김율 장군은 송정리에서 일본 군인들에게 붙잡혀 광주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태원은 동생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짜다가 허리병이 도져서 치료차 임곡의 박산마을 뒤 어등산 자락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쳐놓은 일제 밀정에게 발각되어 1908년 4월25일 급습해 온 일본군의 집중 사격 속에 전사했다. 일제는 다음 날 감옥에 있던 아우 율을 데리고 와서 형의 시신을 확인시킨 뒤에 율마저 그 자리에서 총살해 버렸다. 태원의 나이 39세, 율의 나의 2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