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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의사 권흥규선생 순열비문 선생은 관향이 안동이요 이름은 흥규이니 습재 권공 벽의 후손 사형의 아들로 고종왕 경신년에 태어나시어 청양군 목면 산심리에서 사시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문학에 능숙하였으며 정산 문묘 직원을 지내시다. 서기 1919년 삼일독립운동때에 비장한 결심을 품으시고 음력 삼월 오일 정산시장으로 달려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시니 추종하는이 많았다. 이에 선생은 군중을 이끌고 일본헌병 파견소에 나아가 큰소리로 우리나라는 우리가 다스려야 할것이니 너희들은 즉시 물러가라고 항의하셨다. 일본 헌병들은 공포를 쏘았으나 선생은 더욱 분기하여 항쟁하시니 또 일본헌병들이 총을 연발하므로 헌병은 선생은 가슴을 헤치고 달려들어 마침내 실탄에 맞아 쓰러지셨으니 당년 육십세이셨다. 이날 밤은 유달리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다음날 영구가 집으로 돌아갈때 이웃 여러 마을에서 각각 상여를 갖추어 따르며 곳곳에서 제전을 베프니 횃불이 십 오리에 뻗히였다. 밤에 멀리 공주에서도 일본 헌병들이 몰려와 난사하여 선생의 질녀와 최봉안, 유행길, 강응렬, 윤광원, 김국상등은 쓰러지고 선생의 따님은 적의 칼날을 앗아잡아 세 손가락이 끊어지고 몸에 총알의 관통상을 입었다. 그 다음날 선생을 안심리 여우고개에 장사할때 개인 날씨에 뇌성병력이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