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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然)히 일어났다. 일제(日帝)의 잔혹(殘酷)한 식민무단통치(植民武斷統治)에 민족적(民族的) 항일운동(抗日運動)인 독립만세(獨立萬歲)의 고동(鼓動)은 끊이지를 않았다. 이곳 첩첩산중(山中)에서도 애국원정(愛國袁情)의 불타는 일편단심이 없었겠는가. 청양(靑陽)에서는 처음으로 4월(四月) 3일(三日) 미량리(美良里)에서 독립만세준비(獨立萬歲準備)가 일제(日帝)의 사전탐지(事前探知)로 제압을 당하여 울분이 더욱 고조(高潮)되었다. 이에 4월(四月) 6일(六日) 운곡(雲谷) 면민(面民)들은 신대리(新垈里)을 중심(中心)으로 각(各)마을 산(山)봉우리 정상(頂上)에서 독립(獨立)의 횃불을 올리고 목놓아 독립만세(獨立萬歲)를 부른 면민(面民)들이 육백명(六百名)이었다. 4월(四月) 8일(八日)에는 밤 10시경(十時頃) 비봉 면민(面民)과 함께 면내 각산(各山) 위에서 횃불을 놓고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 한 면민(面民)들이 6백명(六百名)이 넘었다. 독립(獨立)을 위한 항거(抗擧)로 효제리 27인 신대리 22인 원덕리 17인위 위나리 15인 모곡리 9인(九人) 영양리 5인 모두 95인의 인사(人士)들이 일제(日帝)의 비인간적(非人間的)인 태형(笞刑)으로 구십(九十)도 칠십(七十)도 오십(五十)도씩을 당하였다. 침략자(侵略者) 일제(日帝)의 잔인혹독(殘忍酷毒)한 탄압(彈壓)을 무릅쓰고도 독립(獨立)의 함성(喊聲)을 외친 선열(先烈)들이 어찌 숭고(崇高)하고 거룩하신분들 아니겠는가 위대(偉大)하고 고귀(高貴)하신 선열(先烈)들의 혼령과 구국(救國) 횃불이 있었기에 조국광복(祖國光復)의 영광(榮光)을 성취하고 일류국가(一流國家) 건설(建設)에 만진하여 조국(祖國)의 통일(統一)을 기약(期約)할 수 있지 않는가. 민족(民族)의 자주(自主)와 독립(獨立)을 위한 민족적(民族的) 항전(抗戰)인 삼일운동(三一運動)은 민족(民族)의 불명정신으로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기릴 자랑스럽고 소중(所重)한 유산(遺産)이다. 선열들이 의연(毅然)히 의거(義擧)하신지 구십성상(九十星霜)에 광복(光復)의 날을 맞이하여 기념비(記念碑)를 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