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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3월 1일 국권회복을 위한 울분에 젖은 배달민족의 만세함성이 전국방방곡곡에 울려퍼림에 의연히 구국일념으로 비장한 각오를 다지시고 만주로 건너가서 북경에 본거를 둔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셨다. 조국광복에 골몰하시던 공은 서기 1922년에 유석현 김지섭과 함께 제등총독을 암살할것과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및 조선은행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신뒤 군자금마련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동년 12월 23일에 서울무교동에 거주하는 부호이며 조선총독부판사인 백윤화를 찾아가 거사 내용을 알리고 군자금 5만원을 요구하자 재산상속을 받이않아도 거금을 조달할수 없다고 거절당하였다. 공일행은 그의 부친 백운영을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했으나 그 역시 순순히 응하지 아니하여 권총을 꺼내들고 2천원을 꼭 조달토록 명령하고 돌아와 백윤화에게 생명을 소중히 여기거던 돈을 마련한뒤 단매문 구내게시판에다 '다음열차로 떠난다는 암호를 쓰라'는 편지를 보내고 동월 25일밤 공과 유석현이 군자금을 인수차 백윤화의 잡에 찾아가셨다가 사전에 잠복한 본조경찰서왜경에게 피체되어 시국표방강도죄로 중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혹독한 옥고를 치르시다가 서기 1931년 2월 9일에 옥중순국하셨다. 이렇듯 공의 애국충절과 살신성인하신 강인한 항일투쟁의 발자취는바로 조국광복의 근저가 되었으며 거룩한 애국정신은 정의구현의 대도로서 온백성의 귀감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공의 성충대의를 추앙하여 서기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을 추서하고 서울동작동국립묘지 충렬대에 안장하였으니 그 기상은 영원불멸하리라. 공의 거룩하신 충의와 애국정신을 기리빛내기 위하여 이에 청양군민의 이름으로 이곳 공의 향리에 기적비를 세우니 이 애국단성 천추에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