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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하고 난폭한 언동으로 머리를 깍으니 아! 선생도 끝내는 버텨갈 수가 없었다. 여려분이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모두 식음을 전폐하고 선생은 와석신음 5일 동안이나 물 한 모금 넘기지 아니하니 형사가 규당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기계를 써서도 음식물을 먹일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늙은이들이 죽지도 못하고 곤욕만 칠을 것이다」이토록 모진 악형을 겪은 끝에 나라 잃은 서름을 안은 채 가까스로 방면은 되였으나 선생은 매양 죽을 땅에 죽지 못한 것을 안타까이 여겼으며 일평생의 항일투쟁으로 가혹한 옥살이에 크나큰 상처가 병이 되여 마침내 이러나지 못하고 정해년 2월 15일에 낙계정사에서 운명하시니 슲으다! 그 달 18일에 수많은 유림과 자손들의 호곡 속에 낙지 선영 하경좌에 안장했다. 선생은 참으로 간세의 독실한 분이시다. 백절불굴의 기개와 천마불늑의 소양으로서 오직 구국일념의 형극의 발자취야 말로 후인들에게 애국애정의 정확한 지표를 제시하셨다. 그 공훈 어찌 천도가 무심하랴. 반기야 대한민국 건국포장이 추서되였으니 햇살같이 퍼지는 이 영광이여! 억천년 만대성의 숭앙을 받아 마땅하리로다. 단기 4316년 계해 7월 일 청양군수 김흥태 근수 / 우봉 이우녕 근찬 / 월성 최병식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