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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낙계 김선생 사적비문 천지의 우람찬 기운을 품수하여 이 땅에 태어나 오직 항일구국의 일념으로 고심혈성을 다 바침으로써 그 이름 청사에 기리 남을 분이 있으니 곧 안동 김공 낙계 선생이시다. 선생의 휘는 덕진이요 자는 경명이니 고려때 태사 휘 선평의 후손으로 대대문장 석덕이 끊치지 아니하던 중 부친 휘 익균과 모친 반남 박씨의 장남으로 고종 을축 4월 16일에 정산 낙형제에서 고고의 성을 발하셨다. 천성이 영특조달하시여 8세 입학에 숙사의 독려를 받지 아니해도 문리가 날로 진척되던 중 어려서 양친을 잃고 가세가 자연영체하였으나 간고에 틈만 있으면 오직 학문 탐구에 여념이 없으셨다. 병자년에 왜국이 우리에게 수호조약을 강청하고저 왜장 흑전청륭(구로다 기요타카)으로 하여금 수집의 군감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위협하니 조야가 몹시 술렁거렸다. 이때 선생의 나이 12세 하루는 앞마당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땅에다 감옥을 그리고 종이에 인형을 그려 여러 아이들에게 「결박해 옥에 가두라」하고 또 명령하기를 「이놈의 목을 베어라」하니 이것은 바로 흑전(구로다)의 모형이였다. 뉘 이것을 어린이의 행사라 하리요. 보는 이들이 모두 혀를 내둘러 선생의 특이한 기개를 칭탄하였다. 을미년에 적신 윤중 길준의 무리들리 왜적 삼보오루를 끌어들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해 겨울에 주상의 보말을 늑삭하고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다. 선생이 왜적의 이러한 횡포에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