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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은 충청남도 청양(靑陽) 사람으로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궁내부 주사(宮內府 主事)로 재직하고 있었으나 일인의 만행과 을사 5적들의 매국적 행위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사직(辭職)하였다. 1906년 정재호(鄭在鎬)·김덕진(金德鎭)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고 민종식(閔宗植)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향관(餉官)에 취임하였다. 1906년 4월 정산(定山)·홍산(鴻山)·서천(舒川)·남포(藍浦) 등지에서 의병대를 조직하고 총포와 탄약 등을 입수하여 홍주성(洪州城·오늘날 洪城邑)을 공격하여 많은 적을 사살한 끝에 5월 홍주성을 함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5월 7일 적의 불시 습격을 받아 홍주성을 빼앗겼다. 재탈환을 모색하던 중 적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평리원재판소에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 1907년 7월 적이 고위관직으로 회유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거부하고 항일사상 선양에 주력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이하여 그 부당함을 공언(公言)하다가 연행되어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날 밤으로 탈옥하여 1914년까지 은신생활을 하였다. 1914년 이후 귀향하여 1939년 사망할 때까지 두문불출하고 살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자료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