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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낙안군수 임병찬이 조직한 의군부에 가담하여 총독 테라우찌에게 정권반환요구와 철수요구서를 제출하였다. 임병찬이 피체됨으로써 뜻이 좌절된 공은 만주로 건너갔다. 1913년 공은 길림에서 권총 수정을 구입 귀국하여 풍기에서 채기중 염창순 유장열 강병수 김병렬 정만교 김상옥 정운홍 정진화 황상규 이각등과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대 광복단을 조직하고 무기구입을 위하여 수차 만주에 왕래를 하는 한편 곽한일 김재순과 비밀리에 도일하여 한국침략의 원흉들을 제거할것을 모의하다가 사전에 일경에 발각되어 만주 봉천으로 일시 망명하였다. 1915년 공은 박상진 우재룡 양제안 권녕만 김한종 엄정섭등과 합류하여 광복단을 군대식편제인 광복회로 조직을 강화하여 국내외로 분리 활동키로 하였다. 공은 김상옥 유장열 곽경렬등 동지들과 함께 전라도 보성군의 박용 낙안군의 벌교등지에서 친일주구의 도륙에 적극활동하는 한편 조성일헌병분대를 습격함으로써 무기 다수를 탈취하여 일경과 맞서싸워 전공을 세우고 다시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이후 해외독립운동가들의 뜻이 모아져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니 동년 12월에 공이 국내대표로 상해에 파견되어 임정의 주석 김구 이동휘 이시영 안창호 신익희등의 요인들에게 국내투쟁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결과 탄약 300여발 폭탄 10개를 얻어와 이를 운학 김병순 최기배에게 보관시키고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독립군 사령부라는 독립단을 조직하고 김상옥 김동순 서대순 최석기등의 암살단과 합류하여 1920년 8월 24일 미의원단의 내한을 기회로 일총독 제등을 암살하고 각 관서를 폭파하여 민족의 진의를 전세게에 천명하려는 계획을 수립중 일경에게 체포되어 많은 암살단원과 광복단원이 투옥되는 비운을 맞았다. 공은 이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과 학대로 중병을 얻어 서대문 광주 전주 대전 신의주등 각형무소로 전감되면서 상라서 출옥하지 못할것을 깨닫고 자진을 결심하고 신의주형무소에 27일 대전형무소에서 26일간을 단식하였으나 일경의 집요한 공세로 실패하고 수감된지 19년 6개월만에 형집행정지로 귀가 치료중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후 의사는 옛동지를 상봉하여 독립된 조국에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뜻을 정하고 광복단을 부흥시키매 단장으로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