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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게 14대조이신 청파(靑坡) 세민(世珉)께서는 이몽학난 정난일등훈(靖難一等勳)으로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를 지내셨고 13대조 만지당(晩枝堂) 극경(克暻)께서는 이괄난(李适亂) 정난일등훈(靖難一等勳)으로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겸 의금부사(義禁府事)가 되셨는가하면 8대조 읍행정(挹杏亭) 국주(國柱) 께서는 효행(孝行)이 특출(特出)하사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가 되시고 정려(旌閭)를 명(命) 받으셨으며 6대조(六代祖)이신 차은(茶隱) 경량(璟良)께서도 행의(行義)가 탁이(卓異)하여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가 되시고 정려(旌閭)를 명(命) 받으셨다. 고조(高祖) 간호(간湖) 창식(昌植)께서는 종제(從第)인 화농(華儂) 항식(恒植)과 그 아들이자 증조이신 규당(規堂) 병찬(炳瓚) 그리고 종증조(從曾祖) 병림(炳琳)과 홍주의병운동(洪州義兵運動)에 참여(參如)하였다. 그 우국충정(憂國衷情) 뉘라서 따르겠는가 한 가족(家族)이 다함께 생명(生命)을 초개(草介)같이 아끼지 아니하시고 항일전선(抗日戰線)에 뛰어드심은 세상(世上)을 놀라게 하였으며 길이 빛나는 나라사랑 충절(忠節)의 표상(表象)으로 이는 조상대대(祖上代代)로 이어지는 충효(忠孝)에 바탕한 문중(門中)의 기상(氣像)이자 자랑으로서 우리 모두가 몸둘바를 모르게 하는 바이다. 의병운동(義兵運動)이 열세불리하여 왜적(倭敵)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고 옥(獄)살이를 당하셨는가하면 종고조(從高祖) 항식 어른께서는 대마도(對馬島) 유배(流配)되시는 욕을 당하셨고 증조 병찬(炳瓚)어른께서는 육회(六回)의 옥고(獄苦)와 함께 뜻을 이루지 못함을 분히 여기시고 옥중(獄中)에서 자문(自刎)까지 하시니 그 욕됨이 살을 깎는 그러한 가시밭길을 걸으셔야만 했다. 참으로 일제(日帝)의 핍박은 천추(千秋)에 한(恨)을 남게 하였고 나라 잃은 겨레의 슬픔은 구천에 사모쳤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日帝)와의 항쟁(抗爭)은 끊이지 아니하였다. 민족정기(民族正氣)는 그 슬픔과 한(恨)을 푸는데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을유년(乙酉年) 8월 15일 광복(光復)을 맞이하였고 왜적(倭敵)을 이땅에서 몰아내는데 성공(成功)하였다. 이것은 곧 우리 선열(先烈)들이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쳐 쌓아 올린 광복(光復)이기에 더 한층 값진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할아버님들께서 의병(義兵)을 일으키시고 그 싸움에 참여(參與)하시고 고난(苦難)의 역경(逆境)을 걸으셨던 그 참뜻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면서 여기 무한(無限)한 보람을 느낀다. 나라와 겨레는 영달(永達)한 것이요 삶의 생명(生命)은 유한(有限)한 것이다. 유한(有限)한 삶의 생명(生命)을 값있게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 거기에 인생(人生)의 참다운 뜻이 있다 하겠다. 이 어른들께서 하신 의병활동(義兵活動)이 바로 그것이다. 그 공적(功績)으로하여 고조(高祖)와 종증조(從曾祖)께서는 대통령표창(大統領表彰)을 종고조(從高祖)와 증조(曾祖)께서는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추서(追敍) 받으셨다. 이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