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page


176page

을 내걸고 홍주성 조양문을 내려다보는 하오령에 유진하였다. 이 때에 왜군과 관군은 의진을 향해 맬렬한 사격을 가하였으며 의병들은 이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퇴진하였다. 홍주공격에 실패한 의병군은 광시에서 진용을 가다듬어 재차 공주성을 향해 출진하였다. 먼저 청양을 향해 행진하였는데 이때 공주의 왜군과 관군이 의병의 진로를 차단하였다. 이에 홍주의병은 방향을 바꾸어 청양군 화성면으로 진출하였고 모듬내에 유진하였다. 1906년 3월 17일 새벽 왜군이 합천의 의진을 기습하자 의병들은 무한천을 사이에 두고적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이 합천전투는 병오 홍주의병의 첫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의병의 수는 3천명에 이르렀으나 그 무기가 무디고 전투경험마저 없어 정예의 왜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이 전투에서 몇 사람이 전사하였는지 알려져 있지않고 다만 안병찬 박창로를 비롯한 수백명의 의병들이 투옥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아 곧이어 4월에 홍산에서 제2차 홍주의병이 일어나 마침내 홍주성 점령에 성공하였다. 이기고 지는것을 헤아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병정신이 바로 이곳 합천땅에서 싹텃으니 여기 전적비를 세워 유혼을 위로하고 후세의 귀감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