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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임경호 선생은 호가 시인으로 평택임씨 충정공 휘 언수의 21세손이시다. 공은 항일독립운동가이신 임승주 선생의 장남으로 1883년 3월 3일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에서 출생하시다. 유년과 소년기에 호서의 석학이신 숙부 임한주 선생에게서 사서를 수학하시고 서기 1900년 우당 이회영 선생과 성제 이시영 선생 형제분의 중국 망명 길에 동행하시여 77여년간 신흥무관학교 신민회 경학사 무정부주의 연맹에서 활약하시다. 국내로 잠입하시니 1919년 전국 유림대표 137명으로 연명된 독립청원서를 파리평화회의에 보내는 특사로 지명받으신 바 있고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의 창립위원으로 전국 강연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32년 친제 성호가 운영하는 전북 김제에 있는 금광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받아 이회영 선생의 비밀결사단조직에 동조하였다. 공은 1941년 동아흥산사 총회에서 김창환 심훈 민영달 한기악 박중화 외 60여명과 같이 종로 경찰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1944년 2월 16일 59세를 일기로 광복을 눈앞에 두고 대구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시니 정부에서는 198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공은 제 성호로 하여금 삼협공업주식회사를 설치운영케 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시키므로 제씨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이후 해방을 맞아 정가에 투신활약하였으며 정부의 부산 천도시인 1952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제씨 성호를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하였으나 등청 도중 불순분자에 납치되여 생사가 미상이니 비분강개할 따름이다. 선생의 살신성인하신 배일국권회복 활약은 물론 선친 승주 공 숙부 한주 공과 제 성호 등 일가족이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선친께서는 건국훈장훈장애족장을 숙부께서는 건국포장을 추서받으셨으니 임씨 일문의 항일구국공훈은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