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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어떠한 경우라도 물러서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3.1운동에 실질적인 역사를 맡았던 공은 그 생이 다할때까지 민족을 위한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아니하셨습니다. 신간회가 창설됨에 그 아들 래홍씨를 독립의 제단에 바쳐야하는 아픔도 겪어야만 하셨습니다. 무인멸왜 기도는 일제침략에 대한 민족최후의 항쟁이라 할지니 공의 진면목이 여실히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때는 1936년 일제의 폭력이 극에 달하여 거의 대부분의 애국운동가들이 체념상태로 있을때에 공은 전국교인에 밀령을 내려 일제의 멸망을 기도케했읍니다. 이 운동은 3년후 무인년에 왜경에 탄로되어 많은 교도들이 옥고를 치루었읍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조선의 독립이란 도무지 실감이 나지않는말이었습니다. 그러하니 항쟁은 더 처절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제에 의해 적당히 처리되어 그 빛을 잃어버렸읍니다. 나라위해 평생을 바친 공은 1940년 4월 3일 86세를 일기로 환원하셨습니다. 공이 가신지 5년뒤 일제는 망하고 조국은 광복이 되니 공이 전개한 멸왜운동은 실로 비장한 역사적 결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식어가던 광복의 의지를 소생시켰던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선열의 유훈을 명심하고 구천에 계신 공의 혼령을 위로하면서 새역사 창조에 정진하고자 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