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page


357page

동학농민군이 사용한 우물 수탈과 탐학의 부패정치질서를 혁파하고 일제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내포지역 3만여 동학농민군은 한양진격을 위해 집결했던 관작리에서 관군, 유회군으로 편성된 진압군을 물리치고 1894년 10월 27일 이곳 송산리 역리 일대에 주둔했다. 농민군은 동학창도자 수운 최제우 탄신일인 28일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다음날 홍주성으로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무수한 희생자를 남기고 불행하게도 좌절되고 말았다. 보국안민 기치를 들고 일어섰던 동학농민군의 자주 평등 자유의 숨결이 서려 있는 이곳은 역리 마을과 함께 내포동학혁명사에서 중요한 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