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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이 2006년 5월에 군위원 임기를 마치고 한내장 4.2만세운동 제2대 기념사업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고덕면지 출간이 해를 넘길 수 없다고 수시로 재촉해서 조선 순조 1년(1801) 신유 사옥까지 언급하고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면 단위의 지방역사라 하나 국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니 상호 관련성을 규명하며 엮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 역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필자의 역사관과 고려 이전을 불교사관으로 이해하고 조선시대를 유교사관으로 평가하려는 융합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 읽기는 쉬우나 쓰기는 어려워서 시간을 지체하게 했는데 년월은 물론이고 날짜까지 밝히려는 실증적인 태도가 더욱 이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고덕면지는 출간 이후 찾는이가 많았다 한다. 이만위 위원장의 패기와 헌정과 인내가 이루어낸 결실이라 하겠다. 2007년 1월 10일 방한일 면장의 주선으로 고덕면지의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치르고나자 이만우 위원장의 신망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제2대 한내장 4.2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회장직에만 전념하게 된 이만우 회장은 윤관호 사무국장과 함께 사업회 발전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2008년 1월 18일에 인한수 장문환 양의사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사우 건립비로 군비 2억 도비 2억 국가보훈처 1억 2천 7백만원 등 도합 5억 2천 7백만원의 지원을 받았다. 2008년 11월 16일 사우를 준공하자 이만우 회장은 이제상 선생과 윤관호 사무국장 등과 함께 필자를 찾아와 그 이름과 현판 글씨와 기문을 함께 지으라 한다. 사양해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으로 쾌락하고 여러날 고심끝에 대의사라 이름짓고 2009년 1월 1일에 대의사기를 지어 당대 명필인 외우 남우 원중식 선생에게 특청하여 기문과 현판 글씨를 써 주도록 부탁하였다. 드디어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