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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독립정신을 품고 사신 일연 신현상선생은 평산이 본관이요 어려서부터 의기를 숭상하더니 마침내 큰 뜻을 품고 19세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 노동대학을 수업하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군자금을 마련하기위하여 잠시 고국으로 돌아와 기지를 써서 호서은행으로부터 거액을 인출하여 국경을 넘었으나 왜경의 추적으로 일이 그릇되자 다시 천진 일본영사관 습격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공주형무소에서 4년 옥고를 치르니 30세였고 그로부터 왜정말기 14년동안 동지의 인연을 맺고 국외탈출을 기도하다 해방을 만나니 41세였다. 심산 김창숙선생 천거로 경교장 변공실장이 되어 백범 김구선생의 측근에서 보필의 책임을 다하고 특히 삼열사의 유해를 반장하는 일에 진력했으며 혹은 유도회 감창위원장 또 혹은 반민특위 검찰관 뒤에 공주로 내려가서는 청소년들을 지도하다가 6.25동란이 일어나 공산당들의 손에 붙잡히어 대전에서 참화를 당하니 향년은 46세이었는데 모든 동지들은 그들 잊지못하고 여기에 비를 세워 그의 한많은 혼을 위로해 드리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