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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이다. 동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그는 김한종(金漢鍾)·김경태(金敬泰)·이재덕(李在德)·김상준(金商俊) 등과 함께 충청도 지방 부호들의 명단을 작성한 후 고시문·포고문 등을 우송하며 군자금 수합활동을 폈다. 또한 김한종·김경태·임봉주(林鳳柱) 등이 1918년 1월 충남 아사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면장으로 친일행동을 자행하던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할 때, 이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했으며 처단시 사용한 권총을 보관하고 있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9년 2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