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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주도한 대한광복회는 1915년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단체였다. 대한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滿洲)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할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행동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립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계획은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과 친일부호 처단 등으로 추진되었다. 김재풍은 동단의 충청도 책임자 김한종(金漢鍾)의 지시를 받고 김상준(金尙俊) 등과 함께 홍성(洪城)의 정인교(鄭仁敎)를 비롯한 충청도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다. 또 광복회의 포고문에 날인할 인장을 새겨 김한종에게 교부하여 동단의 군자금 수합활동을 도왔다. 그러던 중 1918년초 동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1919년 9월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