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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장문환 33세의 일제 공주지방법원 판결문의 한구절에 "왜 사람을 죽였느냐 살려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모두 죽여라. " 1919년 4월 3일 의사는 만여 한내장 시민의 선두에서 격렬하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칠때 왜헌병이 제지함에도 해산하지 않자 급기야 일본칼로 무참하게도 인한수의사를 살해하였다. 이에 격분한 장문환의사는 상국리 윤독회원 이인성, 이윤주, 백치삼, 방찬용, 김창수, 박창래, 양유석, 정덕신, 송현손, 김치관, 전두환, 장두환, 이경순, 지병희, 박영래등과 같이 시체를 높이 받은 그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로 난입하여 가슴을 치며 절규한 소리다. 의사는 서기 1887년 1월 30일 부 장지식, 모 주병수의 2남으로 고덕면 상궁리에서 출생하시다. 1885년경 양촌에 온 불란서 신부 퀴를리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라고 설파한 신학문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의사는 유학의 고장 면천유학을 마치고 고향에서 서당을 개설하였으나 1918년 탄압폐지되자 의사는 즉시 양촌교회에서 청년야학을 열고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이 회원들이 4.3한내장의거의 주역이 되였다. 의사와 이인성은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의사는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받았고, 이인성은 석방되었으나 두분 다같이 고문의 여독으로 그후 6년을 넘기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의사는 1992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으시고 2003년 11월 7일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배위 임정숙여사와 같이 안장되시다. 이는 우리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행사를 작은 소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