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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선생 순절기 수당 이남규 선생은 고려말 목은 이색 선생의 후예로 1855년 서울 미동(尾洞)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 벼슬은 궁내부 특진관에 올랐다. 일제의 침략마수가 이땅을 죄어들자 일찌기 척왜항일의 굳은 신념을 불태워온 수당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영흥부 사직을 박차고 왜적을 물리칠 것과 적신의 머리를 베라는 추상같은 상소와 실제의 행동은 당대의 추앙을 받았다. 1906년 왜병들의 홍주성 봉가를 뒤에서 후원하고 의병장 민종식을 숨겨준 일로 왜군에 의해 공주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1907년 9월 26일 선생을 두고는 그들의 침략이 뜻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안 백여명의 왜군은 이곳에서 20여리 떨어진 대술면 상항리 선생의 사저 평원정(平遠亭)을 에워싸고 묶으려 했다. 선생은 이에 "선비는 죽을 수 있으되 욕된 일은 당하지 않으리라."하고 외치며 가마를 타고 나섰다. 해가 지기를 바라 뒤따르던 왜족들이 이곳 평촌 냇가에 이르러 선생을 마지막으로 회유하자 "죽을수는 있어도 너희에게 굽히지 않겠다."는 선생의 호령이 떨어지자 저녁놀에 반짝이는 칼을 높이 쳐들었다. 뒤따르던 맏아들 충구가 몸으로 선생을 감싸자 내리친 칼에 쓰러지니 가마를 맨 하인 김응길 가수복이 또 선생을 에워싸는 순간 칼날이 어지러히 비켜 아들도 하인도 선생도 모두 쓰러지니 향년 쉰셋이었다. 오호라! 이 어찌 천추에 빛날 충절이요. 효도이며 충복이 아닐손가. 사람은 갔으되 그 불멸의 정신은 여기 해지는 석양 지나는 길손의 피를 끓이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1986년 12월 15일 충청남도지사 안응모 지음 한국예총충청남도지회장 조종국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