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page


104page

1894년 9월 18일 동학교주 최시형의 기포령에 따라 9월 그믐 예산을 비롯한 내포지역도 2차 봉기인 동학혁명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내포동학의 조직인 춘암 박인호, 예포 박덕칠의 농민군은 삽교 성리에 예포대도소를 설치하고 해미, 온양, 덕산 등의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확보하고 10월 7일 대흥관아를 점령했으나 홍주 진압군의 기습적으로 예포대도소를 공격해 오자 농민군은 서산 여미벌에 재 결집, 면천 승전곡에서 일본군 정예부대를 대퇴시켰다. 사기충천한 2만여 농민군은 구만리를 거쳐 오가 역탑리에 주둔하고 서울 공격을 위해 10월 25일 관작리에 주둔했다. 다음날 아침 홍주 진압군은 농민군을 향해 총 공격을 개시하자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숫자가 우세한 농민군은 일시 흩어졌다가 포위공격하여 진압군을 패퇴시켰다. 늦게 오던 일본군 서로, 제 2중대는 오가에서 패퇴하는 진압군과 함께 홍주성으로 퇴각하고 농민군은 곧바로 예산관아를 점령했다.
104page

출처 : <a href=http://www.oneclick.or.kr/contents/nativecult/area09.jsp?cid=72048 target=_blank> http://www.oneclick.or.k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