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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집의사 유적 최상집(1849~1909) 의사는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으로 본관이 강릉이고, 자는 중일 호는 남호이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 1906년 민종식은 부여군 내산면 지티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산, 서천, 판교, 웅천, 남포, 보령, 광천, 결성을 걸쳐 홍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최상집 의사는 58세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왜병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무너지면서 의사는 포로가 되어 유준근, 이식, 안항식, 신보균, 신현두, 이상구, 문석환, 남규진 등과 함께 대마도 유배형을 받고 끌려가 기약없는 기간의 고생을 하면서도 저들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절의를 기켰으니, 최상집 의사를 비롯한 이들을 '홍주의병 대마도 9의사'라고 한다. 의사는 몇번에 걸친 감형이 이루어져 3년만인 1908년 10월 석방되어 고국에 돌아왔으나, 의병운동의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이듬해인 1909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2년에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의사의 업적을 발굴하고 2006년에도 이곳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의사의 묘소를 추모비 뒷편의 언덕에 옮겨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