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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였으나 1905년 일제의 을사5조약에 항거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같은해 12월 배일 및 내정 부패 탄핵 상소로 인하여 고군산도로 유배되었다가 2개월 후 특별 사면되어 법부 참사에 임명되었으나 불복하였다. 1906년 대구로 내려가 광문사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보급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운동과 애국계몽을 위한 강연활동을 하였으며, 1907년 서상돈 등과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운동은 거국적인 국민운동으로 전개되니 일제의 끈질긴 파괴공작으로 좌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일신학교를 세우고 해외교육 구국운동에도 헌신하였으며, 다시 국내에 들어와 노동단을 조직,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전국각지를 순회하며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애국의 뜻을 펴지 못하시고 1920년 (음) 6월 9일 향년 55세에 객지 마산에서 순국하셨다. 1982년 8월 15일 독립유공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김공이 충의의 일념으로 평생을 바친 투철한 애국사상은 세세무궁 우리의 민족혼으로 승화될 것이다. ...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