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page


44page

황재현선생 항일의병사적비
44page

충남 보령 출신으로 1896년 유인석의진에 초청받았으며, 동년 2월 아관파천 이후 충남 보령에서 이세영 등과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황재현은 1878년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에 올랐으며, 1881년 이만손 등의 영남만인소에 이어 충청도 대표로 홍시중과 함께 척사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서 그는 조선책략을 불태울 것을 주장하는 시무책을 주청하였다가 다른 상소자들과 함께 전라도 지도에 유배되었다. 그 후 귀양에서 풀려나와 호좌의진의 유인석으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하였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후 황재현은 이세영·이관·김홍제 등과 함께 남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세영은 충청남도 청양 사람으로 1895년 9월 자신의 집에서 박창로·정제기·송병직·조병고·김정하 등과 함께 군사 활동에 대한 원칙을 비롯하여 군사모집·무기수집 등 구체적인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1896년 1월 12일 향회를 열어 홍주 일대의 유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군사행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180여 명의 민병을 모집하고, 다음 날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1월 17일 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홍주의병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세영은 홀로 홍산으로 빠져나가 2월 남포에서 황재현·이관·김홍제 등과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