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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서두르는 동시 지역단위의 농민협회를 통합케하여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장군이 주석이 되었으니 장군은 탁월한 전략가일뿐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 걸쳐서 뛰어난 경륜을 발휘하던 위대한 애국투사요 민족의 횃불이요 조국광복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분하고 슬프다. 기사년 즉 1929년 음력 12월 25일 오후 2시 북만주 영안현 산시에서 고려공산당청년회 악한의 흉탄을 맞고 쓰러져 마침내 41세를 일기로 조국광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채 이세상을 떠나시었다. 장군이 세상을 떠나시자 부인 오씨는 1940년 9월 삼엄한 일본군의 경계망을 피하여 유골을 모시고 남하하여 장군의 출생지인 충남 홍성군 갈산에 가매장하였다가 1957년 음력 1월 13일 부인 오씨가 별세하자 이 곳에 이장 합폄하였고, 1971년 9월 보령군에서 장군과 묘를 중수하고 이 비석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서기 1971년 9월 일 글 팔봉 김기진 글씨 일중 김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