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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묘(金佐鎭 將軍 墓) 김좌진(1889〜1930)장군의 무덤으로 원래 1940년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된 것을 1957년에 장군의 선산(先山)으로 옮긴 것이다. 장군의 호(號)는 백야(伯冶)이며, 갈산면 백야로 506번길(행산리)에서 태어났다. 18세에 호명학교(湖明學校) 세워 새로운 학문을 교육하였고,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3년간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 ·1 독립운동 후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총사령관으로, 1920년 일본군을 맞아 청산리전투에서 3,000여 명의 일본군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1925년 김혁(金赫)과 신민부(新民府) 조직하여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으며, 1930년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주석(主席)에 취암하여 재 만주 동포의 교육과 민생문제에 주력하였다. 한편 중국의 함일 세력과 함께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대일 항전을 준비하던 중 1930년 1월 공산당 청년 당원에게 암살 당하였다. 1962년 3월 1 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