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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추강 백낙관선생 추모비 건립약사 추강 백낙관선생은 성리학자이고, 병조참판을 지낸 백홍수의 아들이다. 추강 백낙관선생은 조선말 서세동점초기에 장차 이나라가 망할것을 미리 알고 나라를 망치는 간신배척 신탐관오리를 처단하여 나라를 바로 지키자하는 위정척사상소를 수차례 올리었던만 조선조정은 그 말을 듣지않고 오히려 임오군란의 주모자로 제주도에 위리안치하고, 흥선대원군을 청나라에 납치하게 한뒤, 제주도에서 추강선생을 소환하여 반상부도라는 죄로 극형에 처하니 38세로 살신성인순국하시었다. 선생사후 25년이 되는 1907일자 조보에 왕명으로 신원되었으나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36년만에 조국이 광복되고 2년후 족손 백창균선인의 노력으로 위당 정인보선생으로 부터 추모비문을 지어받고, 백범 김구선생이 쓴 추모비문을 마련하였고, 1948년 충남도지사, 농림장관 정낙훈등 경향각지에서 모인 198명의 의사 추강선생 경모회 주최로 추모비를 세우려다 6.25동란으로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러 방현손 승면, 승학이 희사하고 방증손 양흠, 인호,이호의 주선하에 임근혁 주산면장의 협조로 이제서야 추모비를 세우게 되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