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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열사는 보령 5열사의 한 분이니 경술국치 때 항일의병장으로서 용감히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권 일본 대마도로 압송되여 유인생활 4년의 고초를 겪으며 오직 구국과 동포애로 일관하다 폭사한 독립유공자인바 자는 순경 호는 우록이다. 열사는 서기 1860년 경신 12월 18일에 진사 전주 류공 형의 아들로 녹문리에서 출생하고 시조인 완산백 휘 답은 그 18대조요 조부는 휘 난철 어머니는 광산김씨요 부인은 여흥민씨이다. 조실부모하여 수학 기회를 놓쳤건만 총명이 과인하고 판단력이 명확하여 어른도 감복했다. 망국을 비분강개하여 적병에 항거할새 의병대장 민종식의 주모로 서주 비인 남포 보령 결성의 의병장이였던 열사는 병진 4월에 일경이 경찰 70여명을 이끌고 야음을 틈타 홍주성에 밀입하매 이를 섬멸하니 다시 적장 다나까 소좌란 자가 무장군 수백명을 끌고 동문으로 엄습하니 적과 백병전이 벌어져 맨주먹인 우리 의병들은 장렬히도 옥쇄할제 홀로 대장만 피신함을 본 열사는 의병명부를 소각 후 병력 같은 소리로 의병장 류모 여기 있다 외치니 이윽고 적군에게 피체되어 서울로 압송 무기형을 치루게 되어 그 옥고는 생불여사 이면서도 고종임금께 대한 충성심은 한결 같았고 그들이 주는 의식은 전혀 거부하고 식음을 전폐할새 강식을 당하면서도 그의 거동에는 위엄이 서려있어 적추까지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의 협기와 애족심이 출중하였음을 이루다. 기록하지 못함은 애석한 바이나 구국애족한 거룩한 업적은 길이 청사에 빛날 것이다. 그는 대한민족의 구국대운동에 앞장 서 주동 하려다가 상경길에 폭질로 누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