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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녹도에 들어와 의병이 숨은 곳을 찾으려고 주민들을 가혹하게 조사하였다. 주민들은 보복과 고초의 위험을 무릅쓰고 협조하지 않았다. 이에 의병들은 포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의 배가 밤에 동풍에 밀려 해안으로 떠밀리자 1907년 9월 8일 포구의 「돌끝」과 「노랑바위」에 은신하여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고 배를 침몰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의병들은 보복을 피해 주민들에게 섬을 떠날 것을 권고하고 주민들과 함께 섬을 떠났다. 그후 9월 14일 군산에서 의병 진압을 위해 일본군과 경찰이 들어와 이장과 남은 주민들에게 의병의 소재와 상황을 조사하려 했으나 협조하지 않자 이장을 살해하고 녹도를 초토화했다. 남은 사람들은 호도로 헤엄쳐 피신했는데 추격해 온 일본군에 의해 호도와 삽시도 당산이 화재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초토화된 녹도의 주민들은 잠시 섬을 떠났으나 다시 돌아와 섬과 주벅망을 복구하고 평화롭고 풍요한 섬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녹도에 항일 의병 활동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협조한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온 녹도의병 상황을 보령문화연구회에서 2016년 자료수집과 주민 증언을 바탕으로 그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고, 일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항일 투쟁에 나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병과 국가의 주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