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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리 샛갓에서 태어나시다. 유시에 백부 휘 조겸공에게 입양하시고 1889년 갈성문과 병과에 급제 부수선에 등용되어 수선교리정언을 거쳐 특평으로써 동서학교수와 전시대독관을 겸하다가 1874년 응교사복시정을 지나 익년 동 부승지 우부승지에 오르셨으나 동년에 명성황후 민씨시영사건을 당하자 홍주로 귀향하여 관하 17군역 거의격문을 발하고 김복한을 총사로 군진을 가추었으나 목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왜경에 피집되시었다. 그 동안 토왜상소와 격문으로써 왜침의 부당성을 수차천명하시니 황실에서는 특사후 오리려 안주 군수를 제수하시었으나 궂이 사양하시니 이는 다시금 의용지재를 만나 구국의 대지를 펴고 저하심이라. 1905년 을사변란을 당하시매 매국오적의 처단을 상소하고 김복한과 동도 상경하여 국권회복 제략을 단모하시다가 재집투옥되시다.여시한 수난이 어찍 일량차이었더냐 회차마다 신애하시고 필경 사경에 이르시매 1906년 병오 윤 4월 29일문두의 유소와 순절시를 남기고 자진순국하시다. 이토록 공께서는 나라의 정간이시라, 그 백절불굴하신 충절과 지기는 밤하늘의 성좌처럼 우리 민족의 빛이요 자랑이로다. 솔과 가람이여 그 프르름을 님과 함께 온 누리에 빛내어라. 나라에서는 이미 1963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시었으며 후에는 증손 인배가 있고, 인배생자에 종억, 종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