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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산 유래 이 산은 삼한시대부터 오곡이 풍요롭게 자라던 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명산으로서 백제때의 산명은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고 고려 후기에 와서 철마산이라고 하였다. 고로들의 구전에 의하면 노은리에서 태어난 최영 장군이 금마들을 달리며 무술을 연마할때 자주 이 산에 올랐다 한다. 하루는 사랑하는 말(金馬:말이름)과 날으는 화살과 겨루기로 하였다. 한숨에 달려온 말이였건만 화살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 느렸던 것으로만 생각하고 패자의 말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들어 관혁에 꼽히는 것이였다. 일생을 두고 단 한번의 큰 실수로 애마를 잃은 최영 장군의 고사가 이곳에 상존하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최영 장군 타던 금말(金馬:말이름)이 묻혀있는 곳을 금마총이라 부르고 활을 쏘았던 그 산을 철마산이라 호칭해왔다는 것이다. 요즈음 불러지는 이름은 봉화산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를 되찾으려고 이 지방 주민들이 3.1운동때 이 산에 올라와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며 봉기한데서 유래된다. 기미년 3월 1일 8시경 이원문 씨 집에서 이재만 최중삼 조한원 민영갑 김재홍 조재학 김종석 일곱분이 만세를 부르고 산봉에 오르니 이들을 따른 군중의 횃불이 산봉을 불꽃으로 덮혔었다고 전해온다. 장열한 애국심이 비길데 없는 지모와 용기로 이곳에 참여한 선현들의 눈물겨운 활동과정을 되새겨보면 눈앞에 선연하다. 이 산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두 이름으로 이 고장의 얼을 빛내주고 있다. 고려 이후 현재까지 호칭되어오는 철마산도 최영 장군의 뛰어난 무술과 용맹을 그리고 현재 새로운 산명으로 봉화산은 우리의 민족 정기를 새롭게 되살려주고 있다. 이 산에 얽힌 최영 장군의 전설과 184 선열 및 주민들이 봉화를 올린 사실을 추모하는 3.1 기미독립운동기념비가 대한노인회 금마면 분회의 주관으로 면내 유지들의 정성을 모아 철마산 하노변에 1984년 8월 15일에 건립되어 매년 제향을 올리던 중 시대 변천에 따라 그 지점에 방치할 수 없는 실정이므로 철마산체육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이황영) 여러분의 주관으로 이 산에 봉안되였고 또 이 뜻을 기록에 남기고져 이 비를 세운다. 서기 1992년 6월 일 건립 / 홍성군향토문화연구회 회장 배동순 지음 / 국회의원 조부영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