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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일찌기 항일의병대장 김복한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시였으며 가정적으로 충효정신을 전수한 바 있었기에 기미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33인의 독립선언문이 발표됨과 함께 일제에 대한 전국적인 민족항쟁이 일어낫든 당시에 공은 21세의 나이로 거주지 홍동에서 다수군중을 발기 종?청광산에 집결하여 봉화와 만세의 함성을 올리던 중 왜경에 구금되어 무수한 곤욕을 당한 사실이 있어 그곳에 기미독립만세 기념비가 건립되어 31제전을 올리고 있으며 1923년 26세시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지령을 받아 이규준 이강인 등 동지와 같이 독립군자금모금운동을 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1년여에 옥고를 당하시였고 그후 1930년에는 홍성에서 김준동 심상식 전용역등 우국지사와 더부러 유교부식회와 인도사를 창설하여 인도잡지를 발행하는 등 민족정신 계발과 청소년 선도사업으로 여생을 보내시였다. 1986년 12월 16일 국가로부터 선생의 애국공로를 존모하여 대통령표창이 추서됨과 아울러 희사금을 보내왔기로 여기에 돌을 다듬어 비를 세우니 충효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여 영원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1987년 12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