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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태 선생은 1906년 민종식 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남포에서 홍주성을 향하여 행진할 때 지방부호의 창고를 열어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의병을 지원하였다. 1908년 홍주향교의 도유사(都有司)로 있으면서 영재배출을 목적으로 사재를 털어 광천덕명학교를 설립, 57회에 걸쳐 졸업생을 배출하고 후진교육에 이바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홍천군 광천면에서 오인섭·이명종·최응모·성인배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500여매를 등사하여 주민들에게 배부하는 등 시위 준비를 위해 활동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