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page


300page

공은 서기 1861년에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수란리(왕지동)에서 출생하셨다. 평산후인으로써 장절공 32세손이며 신영희씨의 장자이고 배위는 한산이씨이다. 예절을 숭상하여온 가문에서 성장하여 일찌기 학문에 뜻을두고 도학을 강구하셨다. 서기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민종식의 항일의거에 참여 이식 신현두 안항식 의병과 합세하고 공은 유병소 참모사로 활약하여 홍주성을 탈환하였다. 이때 신무기로 무장한 왜적이 반격하여 전투가 벌어지니 이 싸움이야말로 병오 홍주의병 싸움으로 홍성을 충절의 고장이라 일컬어지는 연유이며 이 전투는 민족사와 더불어 길이 길이 청사에 빛나고잇는 것이다. 공을 위시하여 의거의 중심인물이었던 9명의 의사가 중과부적 일군에 체포되어 경성헌병사려부를 거쳐 대마도에 유배되어 엄원경비대에 수감되었다. 후에 수감되어온 면암 최익현 임병찬과 더불어 11명의 의사는 전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추호도 뜻을 굽히지 않자 오히려 왜인들이 경복하고 두려워 하였다. 옥중일기 동고록 3권은 우국충정의 심혼이 담겨있는 시문학의 정수이기도 하다. 유고로는 각계의 격려 서한과 상소문을 기록한 한훤록이 있다. 서기 1908년 6월 18일 고국으로 방환된 후로는 오로지 후세 교육에 전념하시다가 1912년 3월 1일 52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대한민국정부에서는 공의 건국공훈을 높이 기리어 1986년 12월 16일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제 선열들이 남기고 가신 위국충정의 대의를 본받아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도모함에 있어 공의 숭고한 정신을 경모하고 애국정신의 산 표상이 되게 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