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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 신보균 선생은 1906년 5월 민종식 의병장이 홍산에서 창의하고, 서천·보령 등지를 거쳐 홍주에 입성하자 신현두·김상덕과 함께 합세하고 유병소 서기에 임명되었다. 1906년 5월 20일에서 5월 31일 사이에 의병진에서 빼앗았던 홍주성을 함락당하자 일본군은 역습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져 여기에서 김상덕을 비롯하여 80여명의 장병이 순국하고, 윤석봉·이상두 등 80여명이 일본군에게 피체되었으며, 그중 남규진·문석환 등 9명과 함께 일본의 대마도에 유배되어 억류생활을 하였다. 이때 억류중에도 면암 최익현과 10명의 의사간에 우국충절에 관한 시를 많이 지었다. 1906년 12월 17일 최익현이 유배지인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유배중이던 신보균을 포함한 10명의 의사 임병찬·남규진 등 모두가 흰 두건을 쓰고 장례집사가 되어 존제를 지내고 반구를 따라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