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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피맺힌 항거와 투쟁으로 이룩하신 애국지사의 훈적이 찬연하니 휘는 동하요. 호는 우석이며 본관은 경주김씨이다. 고려말의 충신이며 두문동칠십이현의 한 분이셨던 가촌 김자수 선생의 십팔대 후손이다. 선생은 서기 일천팔백구십이년 홍성군 장곡면 가송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용기와 담력이 뛰어났으며 불의와 타협치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셨다. 서기 일천구백십년 일제의 강압에 국권이 늑탈되어 국민은 내 나라에서도 노예로 전락하여 신음할 때 광복을 위한 독립의 함성은 기미년 삼월 일일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삼천리 강토를 온통 자주독립의 열기로 몰아넣었다. 선생께tj는 면내 오백여 동지들과 연일 독립만세를 외치고 사월칠일에는 이들의 맨 앞에 서서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부수고 서류와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일제의 진압군경의 무차별한 총격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급기야 이백여 동지가 체포 압송되었으며 선생께서는 모친과 백씨 그리고 부인까지 세 명이 고문으로 한달 사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 뒤 선생께서는 광복단에 입단 맹활약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일년 유월의 옥고를 치루었다. 서기 일천구백구십이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찬양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하였다. 이제 조국의 위상이 세계의 중심으로 빛나는 이때 선생의 나라 사랑하시던 그 원성이 너무도 사모로워 여기 추모비를 세워 영원히 기리옵나니 부디 민족사와 더불어 백세유광하소서. 서기 일천구백구십오년 삼월 이십육일 장곡 기미삼일운동 유족회 세움 독립기념관장 최창규 글 홍주고등학교 교사 이상민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