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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성역화기 대륙침략의 야심으로 매국노를 앞세워 합방조약을 강결하고 국권을 도취한 도이는 한반도를 거점으로 만주를 침공학고 천하무적의 위세를 자랑삼아 중국을 위협하던 일본군 3천여명의 가납연대가 공복의 염원을 품은 대한독립군이 일성에 중국 화룡현 청산리에서 섬멸하니 일제는 통곡하고 우방 속의 태극기 물결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이는 독립전사상 초유의 대승이었고 이 항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이 이곳에서 태어나신 백야 김좌진 장군이시다. 세전의 삼천석 재산을 분배하여 가노를 최소로 해방시키고 사재를 털어 창설한 호명학교에서 민족 개화교육에 힘쓰다 일제의 추격으로 망명한 장군은 국권 회복의 기치 아래 중국의 황야를 달리며 무력항쟁의 선두에서 총지휘하다. 공산당의 흉탄으로 1930년 음력 12월 25일 순국하시니 민족은 대성통곡하고 산천초목도 애도하였다. 삼엄한 왜적의 경계 속에 오숙근 여사의 조강열행으로 장군의 유해는 고국에 봉안되었지만 잡초 우거진 생가지에는 이슬에 젖은 표석만 외로이 서 있었다가 총 25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6,837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91년 3월부터 생가 복원을 시작으로 기념관, 사장, 부대공사 등 국민의 정성을 모아 마무리 하였다. 이 역사적인 유적 복원은 순국으로 나라를 구하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그 애국정신을 본 받는 교육도장으로 영원한 사표가 되어 천추만대에 빛나리라. 1999년 12월 일 홍성군수 이상선 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