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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단(皇極壇)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황극단(皇極壇)은 전북 임실 출생으로 호남에서 거병한 한말 대표적 의병장인 정재(靜齋) 이석용 의병장(李錫庸義兵將)의 장남인 청암(靑菴) 이원영(李元泳) 애국지사(愛國志士)가 광복(光復)이 되자 부친의 유언을 받들고 부친 및 순국열사 등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고종황제비 (高宗皇帝碑), 대한의장비(大韓義將碑), 대한민국임시정부백범안동김공구지묘비(大韓民國臨時政府白凡安東金公九之墓碑), 대한장의순국5열사기적비(大韓仗義殉國五烈士紀積碑) 광복정령33인추억비(光復精靈三十三人追憶碑) 등을 8년 동안의 요강행상과 전답 2,600여 평을 팔아 현 전북대학교 내에 1955.5.5 건립하였으나, 전북대학교가 건립되면서 현재 위치로 1978년 이전 건립하였으며, 1993년 전주시에서 주변 정화사업(淨化事業)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석용 의병장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7년 진안 마이산 주필대에서 거병(擧兵),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조국의 자주독립(自主獨立)을 위해 일군과 수많은 전투에서 싸워 전공을 세웠으나 1912년 군자금 모집도중 밀고로 피체(被逮)되어 1914년 전주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동년 4월 4일 37세 나이로 순국(殉國)하신 애국지사(國志士)로 정부에서는 이석용 의병장의 공훈(功勳)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建國勳章) 독립장(獨立章)을 추서하였다. "슬프다! 나는 37년을 허송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보지 못한 채 떠나니 너는 고향에 돌아가 조부모님께 효도하고 자손을 잘 가르쳐라. 그리고 나의 시체를 월출이면 일몰이니 영암 월출산 기슭 남해 바닷가 일본땅을 향하여 묻어달라. 그리하면 내가 저승에 가서 일본을 꼭 망하게 하리라. 나는 살아서 황제를 모시지 못하니 네가 선황제를 잘 모시라" - 이석용의병장(李錫庸義兵將)의 유언(遺言) 어린시절부터 부친에게 애국충절(愛國忠節)을 배워온 이원영의사는 부친 순국 후 유허비를 건립하다 피체되어 전주형무소에서 2년여의 옥고를 겪었으며, 온 국민이 염원하던 광복이 되자 부친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황극단(皇極壇)을 건립한 애국지사로 정부에서는 이원영의사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建國勳章) 애국장(愛國章)을 추서(追敍)하였다. 황극단은 이석용 의병장과 이원영의사의 2대에 걸친 애국충절(愛國忠節)과 이원영의사의 지극한 효성(孝誠)을 보여주는 시설이라 할 수 있으며, 매년 5월 5일(음) 황극단 추모대제(皇極壇 追慕大祭)를 거행하고 있다.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에서는 두 분 애국지사(愛國志士)의 공적을 영구히 기리고 민족정기(民族正氣)를 선양(宣揚)하기 위해 2003.9.15 이 시설을 현충시설(顯忠施設)로 지정하였으며,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한 이석용 의병장과 이원영의사의 숭고(崇高)한 애국충절(愛國忠節)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귀감(龜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