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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의 민족운동 애국계몽운동과 학교(1905~1910년) : 학교이름 '신흥'과 지.인.용 교훈 등에서 국권회복과 공화주의를 주장했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신민회와 신흥학교 한국인 교사들의 관련이 추정된다. 이 시기의 우리학교 교육은 민족적 성격이 강했다. 3.1운동(전주 3.13 독립만세운동)과 학교(1919년) : 3.1운동 때 신흥.기전학교 학생들은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앞장 서 이끌었다. 이 운동으로 학교는 2년 동안 고등과 졸업생을 한 명도 내지 못했고, 모진 고문과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신 이가 김경신, 김점쇠, 김병학, 이기곤 등 여럿이었다.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학교(1930년) : 학생들은 민족차별 금지, 식민지교육 철폐 등의 내용을 담은 유인물과 태극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자주독립 만세", "학생 만세", 광주학생들의 항일운동에 뜻을 같이한다는 "동감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함수만은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전주 3.13 독립만세 운동 재현 행사 학교 운동장에서 매년 3월 13일 이전 토요일에 시작하는 이 행사는 기념식, 시가행진 플래시몹, 재연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